결혼식 음악
하면 우리는 대부분 같은 곡을 떠올릴 거 같다.
그렇다면 그 음악이 누구의 어떤 곡인지도 알까? 사실 꼭 기억해야할 중요한 정보는 아니지만
어 그건 누구누구의 곡이야 라고 말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난 도저히 기억이 안나서 이 포스팅 쓰고있다.
우리가 기억하는 대표곡은 두가지 인데
신부가 입장 할 때 연주되는 곡은
리하르트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 1813 5/22 ~ 1883 2/13)의
오페라 ‘로엔그린’ 3막 中 결혼 행진곡.
신랑 신부가 함께 퇴장 할 때 연주되는 곡은
펠릭스 멘델스존(Felix Mendelssohn 1809 2/3 ~ 1847 11/4)의 풀 네임을 훨씬 길다.
‘한 여름 밤의 꿈’ 서곡 모음 中 축혼 행진곡.
그런데 이 곡들이 왜 우리네 결혼식 음악에 터주대감이 되었을까? 난 항상 그런게 궁금하다.
결론 부터 말하자면 영국 왕실의 한 결혼식 때문에 그렇다.
1858년 영국의 공주 빅토리아 아델레이드 메리 루이즈와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3세의 결혼식에 쓰이면서 부터이다
빅토리아 공주가 직접 선곡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배경을 보면 흥미롭다.
결혼 행진곡의 경우는 빅토리아가 바그너의 팬이여서 선곡 하였다는 일화가 있고
축혼 행진곡의 경우는 프로이센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함 이였다고하는데
좀 더 자세히 당시 상황을 들여다보면
엄마 빅토리아 여왕은 딸 빅토리아 공주를 무척이나 아꼈는데 공주 중에서 무척이나 총명했다고 한다
사실 아들을 바랬는데 딸이 나와서 무척 아쉬워했다고 함
그래서 딸을 항상 곁에 두고 싶어했는데 남편인 앨버트 공의 의향으로 프로이센 왕국 왕세자와의 혼약이 체결되어
1858년 1월 25일에 프리드리히 3세와 결혼을 하게 되는데
프로이센 왕실에서는 두 사람이 베를린에서 결혼식을 올려야 한다고 했지만
워낙 아꼈던 딸인 데다 빅토리아 여왕의 독단적인 고집까지 맞물려
빅토리아 여왕은 프로이센 대사를 불러
“영국 이외의 장소에서는 결혼식을 할 수 없다”고 통보해
결국 런던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되버렸다.
사실 결혼 행진곡 / 축혼 행진곡 모두 프로이센의 작곡가 쓴 곡이고 정치적인 관점은 제외 하더라도
자유주의자 였던 빅토리아 공주가 부군인 프리드리히3세와 프로이센의 체면을 배려한 선곡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세기의 이벤트인 황실 결혼식에 당시 최신의 유행곡이 사용되는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2세기가 지난 지금도 사랑받는 것을 보면 요즘 미디어나 연예인들을 통해 이슈 되는 유행들과는 뭔가 다르다는 감상이 든다.
번외.
- 바그너의 로엔그린 3막 中 출병 팡파르 음악은 은하영웅전설 6편에 오프닝으로도 쓰였다.
- 사실 바그너가 멘델스존을 아주 않좋아 했다고 한다. 근데 작품들은 영원히 함께야…..
- 아이러니 하지만 로엔그린의 결말을 비극적이다.
- 축혼 행진곡은 어느 한 평론가는 이 곡을 ‘전 세계 음악 중에서 가장 무거운 관습의 무게를 갖게 되는 음악’이라고 평했다고 한다.
- 친구들에게 결혼식 멜로디를 읍조려 보라하면 서로 다른 멜로디를 흥얼거릴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면…
마성의 음악 – “어머니의 마음” vs 스승의 은혜
나실제 괴 – 로움 다 잊으시고
기를제- 밤 낮으로 애 쓰는마음
진- 자리 마른자리 갈 아- 뉘시며
손- 발이 다- 닳도록 고- – 생하시- 네
(후렴)
아- -아- – 고마워라 스승의 사랑- –
?!?!?!